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루키 카츠아키 (문단 편집) == [[격투가|격투기 선수]]로 데뷔 == 공갈포계의 전설답게 "야구에 미련은 없다", "세계를 대표하는 격투가를 목표로 하고 싶다"고 말하며 2009년 12월 8일, 격투기의 새 단체 "스매시"의 일원으로 입단을 발표, 격투가로서의 데뷔를 알리게 된다. 며칠 뒤 12월 20일에 열린 프로야구 55년회가 기획한 자선 경기에 참가, 9회 대타로 나서면서 좌익수 플라이로 끝났다. 시합 후, 후루키에게는 마지막 시합이라고 양팀의 선수들이 그에게 행가레를 선사했다. 또한, 격투가 변신에 대해서는 2009년 12월 30일에 방송된 TBS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 장절 인생 다큐멘트 우리는 프로야구 선수였다(壮絶人生ドキュメント 俺たちはプロ野球選手だった) 』에서도 소개됐다. 2010년 6월 26일에 니시쵸후 아레나에서 열린 아마추어 DEEP의 제1회 대회에서 종합 격투기 선수로서 [[쵸난 료]]와 2분 2라운드 시범경기를 펼쳤다. 2010년 12월 31일 종합 격투기 대회 중 큰 대회에 속하는 다이너마이트[* 격투기 커리어 하나 없는 무명 파이터인 그를 주최측이 대회에 투입시킨 이유는 시청률 확보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전직 야구선수였다는 이점으로 화제성을 불러모아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 일본의 야구 선수가 격투기에 도전한 경우는 이 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치바 롯데 마린즈]]의 4번타자 출신인 타치카와 타카시는 2007년 K-1에 데뷔해 2승 3패의 전적을 남기기도 했다.]에서 앤디 올로건과 5분 3라운드의 경기로 데뷔전을 펼쳤지만 0-3의 판정패로 깔끔히 패배했다. 2011년 4월 22일 DEEP 53 IMPACT에서 에비 요시타카[* 前 [[메이지대학]] 럭비부 선수.]와의 5분 2라운드 경기에서 2-0 판정승. 격투기 전향 후의 첫 승이 되었다. 그러나 그 경기 이후 후루키는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는 말을 남기며 격투기에서도 은퇴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